해외로맨스소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시기는 몇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다니엘 스틸/경요를 거쳐 주드 데부르/조안나 린지/주디스 맥노트 등이 소개된 이후, 카렌 로바즈 등과 더불어 소개된 작가. 주로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여러 작품이 큰나무를 통해 소개되었다.

어지간한 리사의 작품은 대부분 읽었으나,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작품은 아무래도 <꿈결같은 사랑>이다. 하층민으로 태어나 천재적인 수학감각으로 돈을 모아 거대한 도박장을 가지고 있는 데릭 크레이븐과 시골처녀인 소설가 사라의 사랑 이야기인데, 당시 격동하는 사회배경과 더불어 데릭의 아픔과 좌절, 한계와 매력이 명확히 보이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랑이 그대에게 다가올 때>와 시리즈이기도 한데, <사랑이~>에서의 주인공은 사교계의 무법자로 불리우며 데릭의 친구인 릴리가 주인공으로 여동생과 결혼하려는 앞뒤 꽉 막힌 백작 알렉스를 만나 서로 투닥거리며 정을 붙여가는 이야기다. 비록 시리즈작이긴 해도 <꿈결같은 사랑>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건 시리즈작이 아닌 <꿈이 시작되는 곳>인데 - 꿈으로 시작하는 두 작품; - <꿈이 시작되는 곳>의 남주가 자수성가한 타입의 기업가라는 점 때문일 것 같다. <꿈이 시작되는 곳>의 주인공 재커리 브론슨은 천애고아인 데릭과 달리 어머니와 여동생이 '가족'으로 함께 하는데, 때문에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짙게 배어있는 데릭에 반해(데릭은 심지어 그 때문에 사랑하는 사라를 포기하려고까지 한다!) 재커리의 캐릭터는 좀더 밝고, 자신감에 차 있다. 데릭과 사라 커플을 방해하는 게 데릭의 과거, 데릭의 외로움 쪽이라면 재커리와 홀리 커플을 방해하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신분적 차이. 백작의 딸로 '레이디'인 미망인 홀리와 자수성가한 평민 재커리 사이에는 아무래도 신분적 제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애초 홀리가 재커리와 부딪히게 되는 것도 홀리가 재커리의 에티켓 교사로 고용되었기 때문이니만치, 당시 신분제에 대한 설명, 작위에 대한 설명, 사교계와 신분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다. 당시 귀족들의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도 하고. (여기서부터 살짝 스포일러. 마우스로 긁으면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내가 <꿈이 시작되는 곳>을 <꿈결같은 사랑>보다 조금 덜 좋아하는 이유는, 마지막에 홀리가 병에 걸리는 과정이 뜬끔없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전남편 조지에 대한 약간의 감정이나마 정리하는 차원에서, 또 재커리의 두려움을 표면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평화롭던 진행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이라, 전체적으로 흐름을 깬다는 느낌이다.



<어느새 사랑이>도 흥미로운 작품인데, 여기서는 서른이 되어 청춘이 지나가버렸다는 것에 슬퍼하는 노처녀 소설가 아만다(당시에 서른이면 중년 아줌마로 취급받는 나이이긴 했다)와, 무자비한 경영으로 서자라는 신분을 넘어 자수성가한 출판사 사장 잭이 주인공. 아만다는 서른살 생일을 기념하여, 스스로에게 남자를 선물하기로 할 정도로 귀여운 노처녀인데, 능글맞은 잭과 만나 요로쿵조로쿵 사랑하는 과정이 귀엽기만 하다. 결혼이 싫다는 잭과 평판이 무서운 아만다 때문에 이런저런 위기상황도 있지만 결론은 해피엔딩! 그녀밖에 안 보이고 그녀만이 예뻐보인다는 그 남자는 알고보니 네 살이나 연하. 복 받았지, 복 받았어...


리사의 작품으로 가장 처음 읽은 작품은 소위 향기 시리즈, <그의 향기를 느낄 때>와 <그대 가슴 속의 향기>였다. <그의 향기~>는 아내를 잃고 어린 딸과 함께 홀아비로 살고 있는 루크와 러시아 망명숙녀 타샤. 루크의 딸 엠마의 가정교사로 들어온 타샤가 강렬한 루크의 매력에 이끌리지만 두고온 타샤의 과거가 고난이 되어 두 사람을 위기로 몰아넣는 이야기인데, 가정교사라는 때문인지 여기저기 <제인 에어>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그대 가슴~>은 타샤의 과거로부터 비롯된 고난의 원인, 러시아 출신 망명객 니콜라이 공작과 루크의 딸 엠마가 주인공. 이 작품은 속편이란 걸 빼면 <그의 향기~>보다 재미있는 작품도 수준있는 작품도 못 된다. 커플이 결혼하게 되는 과정, 결혼한 후의 이야기 모두가 마음에 안 들기 짝이 없다. 남자주인공이 개과천선하게 되는 이유가 전생의 경험이란 것도 어처구니 없고. '러시아'라는, 일종의 신비스러운 이미지에만 기대어 작품을 꾸려가는 터라, 매력도가 완연히 떨어진다.


<오직 당신 사랑만으로>와 <당신 품에 안겨> 역시 시리즈. (리사는 두권씩 내는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꿈이 시작되는 곳> 역시 강력조연이었던 레이븐힐 역시 자신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으니) 이쪽의 무대는 위의 작품들과 달리 미국이다. 프랑스 이민자들이 주류사회를 이룬 루이지애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당신 품에 안겨>는 리세트와 맥시밀리안 커플이 주인공이고 <오직 당신 사랑만으로>는 맥스의 아들이자 리세트의 의붓아들인 저비스/필립 쌍둥이와 필립의 약혼자였던 셀리아가 주인공이다. 조로 등이 연상되는 개척기 미국의 이미지인데, 강렬한 이미지의 작품이긴 해도 내 취향엔 별로 맞지 않았다. <당신 품~>은 리세트가 바뀌어가는 모습이라던가 배경묘사, 갈등 때문에 못 읽을 정도는 아니었던 반면에, <오직 당신~>에서는 저비스의 행동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악동이었던 저비스의 행동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냐만은, 후에 필립의 등장이라든지 여러가지가 이해할 수 없어서 - 작가는 그 부분을 프랑스 이민자들의 '기질' (이걸 뭐라고 부르더라만 용어 잊어버림)로 대체해서 설명하고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 납득불가, 평점 나쁨.

<내 품안의 이방인> 역시 여자주인공의 행동 때문에 재미없게 읽었던 작품. 작가가 어떤 캐릭터로 여주를 이미지했는지는 알겠지만, 그 이미지와 작품 속 여자주인공의 행동은 어긋나거나 비틀리는 경우가 많았다. 리사는 자존심과 자립심이 살아있으면서도 남 돌보기 좋아하는 이미지의 천사여주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건만, 내가 보기에 라라(여주이름)는 그냥 이기적이고, 남들 돌보는 척 하기를 좋아할 따름이다. 자기멋대로인 여주의 주장과 행동 때문에 짜증이 치솟아 있는데 남주라는 녀석은 그저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내 운명임을 한눈에 알아서' 그 모든 행동을 감행했다고 해버리니, 이 어찌 짜증나지 않는 커플일쏘냐. 독자에게도 납득할 근거가 필요해욧!

이하는 19금이라 살짝 가려둔다




대체로, 나는 리사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강렬하고, 플롯도 나쁘지 않고, 캐릭터 묘사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린다 아줌마처럼 폭탄과 극상을 오가는 넓은 평가범위를 갖고 있지도 않고, 조안나나 주디스, 주드 아줌마처럼 연작시리즈로 한도끝도없이 세계가 연결되지도 않는다. 꿈 시리즈같은 몇몇 작품은 훌륭하기도 하고. 가장 재미있게 읽는 작가라면 아무래도 줄리아 퀸이겠지만, 리사 클레이파스 역시 신간이 나왔다면 작가의 이름값 때문에라도 읽어줄 정도로 괜찮은 작가군으로 나름 부류하고 있다. 요즘은 신간을 영 못 보고 있지만.(e북 아니면 어둠의 경로밖에 의지할 곳 없는 정보부족 때문이다. 서점에서 '로맨스소설' 코너를 따로 마련해놓고 있지만 로맨스소설 원서를 사보기엔 아직 욕구가 절실하질 않아서...)
2006/05/14 06:29 2006/05/14 06:29
Posted by 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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